Quantcast

전시에 관하여

전시에 관하여

English

고대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신라(기원전 57년-서기 935년)는 ‘황금의 나라’로 유명하였다. <황금의 나라, 신라>전은 서기 400년부터 800년에 이르는 신라의 전성기 동안 제작된 132점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다. 이 전시는 신라라는 작은 왕국이 한반도의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고 국제적 사회로 발돋움하며 마침내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하기까지, 예술적으로 얼마나 큰 성취를 이루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이 전시는 신라 미술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서구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대표 작품으로는 신라 왕족과 귀족의 무덤에서 출토된 황금 장신구, 중국과 지중해 등지에서 수입되어 한반도에 남겨진 독특한 유물, 그리고 범아시아적 양식을 신라 고유의 미학으로 재해석한 불보살상 및 사리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전시에서는 국보 10점, 보물 14점을 비롯하여 해외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유물을 다수 공개한다. 특히 눈여겨 볼 작품은 국보 83호로 잘 알려진 반가사유상이다. 자연스러운 신체 및 입체적인 옷 주름 표현, 정교한 조각 기법과 더불어 특유의 잔잔한 미소가 아름다운 작품으로,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불교조각품 중 하나이다.

이 전시는 삼성이 후원하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국립예술기금이 추가 후원하였다.
대한항공이 운송을 지원하였다.
이 전시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이 공동 기획하였다.
전시 도록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이건희한국미술기금, 그레이스 김(Grace I. Kim)과 가족이 후원하였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보물
4세기 말부터 6세기 초까지, 신라 왕족과 귀족들은 나무 덧널 위에 돌무지와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돌무지덧널무덤에 매장되었다. 이 무덤들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위치해 있으며, 여기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당시의 신라 문화, 특히 죽음과 관련된 신앙과 관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신라가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문화 전통과 연관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황남대총은 신라 고분 중에서 가장 큰 무덤으로, 왕(남분)과 왕비(북분)의 무덤이 나란히 축조되었다. 이 무덤에는 왕과 왕비가 사후 세계에서 영생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물품과 장신구가 함께 부장되었다. 그 중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금관과 금제 허리띠, 그리고 각종 금제 장신구와 유리구슬, 토기와 금속기, 무기, 마구가 포함되었다. 5-6세기에 축조된 다른 돌무지덧널무덤에서도 수량은 적으나 정교한 장신구와 견고한 토기가 출토되었다.

수입 사치품 및 이국적인 도상
신라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외국에서 제작된 사치품도 있어 주목된다. 예를 들어 5-6세기 고분에서 출토된 30여 점의 로마 양식 유리 그릇들은 당시 지중해 인근에서 생산된 유리 제품이 국제 무역을 통해 대륙의 동쪽 끝이었던 신라에서 소비된 사실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황금보검이나 각종 동물과 무늬가 다양하게 묘사된 은잔과 같은 유물도 서아시아와 관련된 희귀한 보물로 동서 교류의 좋은 예이다. 백자, 청자, 당삼채 등 7-9세기에 제작된 중국 도자기도 당시 인기가 많았다.

6세기 중엽부터 신라 고분은 출입구가 있는 돌방무덤으로 변한다. 7-8세기에 이르면 무덤 앞에 커다란 석상을 세우거나 무덤 내부에 작은 도용들을 배치하던 중국의 관습이 도입된다. 이러한 인물상 중에는 외국인을 표현한 예도 있는데, 주로 중앙아시아나 서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생각된다. 신라 유물에 나타난 증거나 일부 문헌으로 볼 때 9세기경부터는 외국인들이 한반도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그 이전에도 중국을 방문한 신라 사람들이 이들과 만나 상호 교류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불교: 새로운 전통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는 527년 신라에서 공인된 이후, 신라 사회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매장 풍습이 변화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예술 전통이 창출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와 같은 문화상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단서가 바로 금이다. 금이라는 귀중한 재료는 한때 왕권의 상징물이나 개인 장신구 제작에 주로 사용되었으나, 6세기 이후에는 주로 불보살상과 사리기를 만드는 데 쓰이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경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창시된 불교는 신라에 도입될 무렵에는 다양한 관례, 전통, 경전 및 도상을 지닌 매우 다면적인 종교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불교 도상으로는 석가모니로도 알려진 싯다르타를 비롯하여, 깨달음을 얻은 초월적 존재인 여러 부처들,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현세에 남기로 선택한 보살들, 종종 수호적 성격을 지닌 다양한 신들이 있다. 

신라의 불교미술은 중국과 양식적 전통을 공유하였으나,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불교미술 역시 수용할 수 있었다. 6세기와 7세기 초 신라에서 제작되었던 불상이나 보살상은 대체로 신체 표현이 뚜렷하지 않고 때로는 주름지며 흘러내리는 두꺼운 옷자락이 신체 윤곽을 가리기도 한다. 그러나 후기로 가면서 몸이 보다 풍만한 불보살상이 등장하게 된다. 가슴과 허리가 분명히 표현되고 신체를 가리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내는 얇은 옷을 걸치게 된다.

Purchase the exhibition catalogue and other related items in The Met Store.

A variety of events are scheduled in conjunction with this exhibition.

See a list of related events.